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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 추리의 끝에서 마주한 인간의 본성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나는 단순히 ‘누가 범인일까’를 맞히는 추리 게임을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장을 넘긴 뒤, 그것이 얼마나 얕은 기대였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단순한 범죄 미스터리를 넘어, 인간 내면의 어둠과 죄의식, 정의라는 개념 자체를 되묻는 깊이 있는 서사였다. 이 책은 아가사 크리스티라는 이름을 영원히 문학사에 새긴 작품이자, 독자를 작품 속 사건의 공범처럼 끌어들이는 강력한 심리적 미궁이다.열 명의 인물, 외딴섬, 그리고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동요이야기의 무대는 인간의 발길이 닿기 힘든 외딴섬 '솔저 아일랜드'. 초대장을 받은 열 명의 남녀가 저택에 도착한다. 그들은 서로를 알지 못하고, 주최자 역시 불분명하다. 다만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모두.. 2025. 4. 12.
팝콘도 잊은 2시간 –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에서 내가 탐정이 되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2017)을 처음 영화관에서 봤던 그날을 지금도 기억한다. 익숙한 추리소설 원작이었지만, 막상 극장 조명이 꺼지고 열차가 설원을 달리는 첫 장면이 시작되자마자 나는 스크린에 완전히 빨려 들어갔다. 팝콘을 산 기억은 있는데, 언제 먹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내 손은 내내 허공을 맴돌았고, 시선은 포와로의 눈동자를 따라 범인을 좇고 있었다.케네스 브래너가 연기한 에르큘 포와로는 내가 알고 있던 캐릭터보다 훨씬 더 인간적이었고, 때로는 차가울 정도로 논리적인 추리 기계였다. 그런 포와로가 열차 안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하면서, 나도 스스로 탐정이 되어버렸다. 그가 승객 한 명 한 명을 추궁할 때마다, 나 역시 속으로 질문하고 있었다. “이 사람의 말은 진실일까? 표정은.. 2025. 4. 12.
영화 디 아더스(The Others, 2001) 리뷰: 심리적 공포와 반전 결말의 정수 2001년에 개봉한 영화 《디 아더스(The Others)》는 전통적인 유령 이야기의 외형을 띠고 있지만, 그 내면은 무의식과 부정, 진실의 직면이라는 심리적 테마로 채워져 있는 독특한 작품이다. 공포영화라는 장르적 틀 안에서 관객의 감정과 사고를 깊이 자극하며, 시간이 지나도 회자되는 고전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1. 줄거리와 배경 설정의 힘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영국. 햇빛에 극도로 민감한 두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 ‘그레이스’는 외딴 저택에서 커튼을 치고 문을 잠근 채 살아간다. 남편은 전쟁에 나가 소식이 없고, 집에는 새로 온 하녀들과 이상한 기운이 감돈다. 아이들은 종종 보이지 않는 존재와 접촉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레이스는 종교적 신념과 이성적 사고를 바탕으로 이를 부정하려 한다.이 단.. 2025. 4. 11.
2024년 다시 보는 식스 센스: 그날 극장에서 멈췄던 숨 그날 극장에서1999년 여름, 친구와 단순한 호기심으로 극장을 찾았다. 액션 영화도, 로맨스도 아닌 심리 스릴러라며 표를 끊었지만, 당시엔 "이게 뭐야?"라는 말이 입에 맴돌 만큼 정보도 없고, 기대감도 크지 않았다. 하지만 상영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영화는 내게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기억의 인장’이 되었다. 바로 《식스 센스(The Sixth Sense)》였다.영화는 차분했다. 브루스 윌리스가 주연인데, ‘다이하드’ 시리즈처럼 거친 액션은 전혀 없었다. 대신 그는 어린 소년 콜을 치료하려는 정신과 의사 ‘말콤 크로우 박사’로 등장한다. 조용하고 느린 호흡의 전개, 정적으로 구성된 화면, 그리고 섬세하게 눌러 담은 감정선. 사실 초반엔 지루할 뻔했지만, 콜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 한마디가.. 2025. 4. 11.
추리영화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추천작 5편 누군가의 거짓말을 간파하는 순간, 복잡했던 퍼즐 조각이 한 번에 맞춰지는 쾌감, 그리고 마지막 장면의 반전. 이런 요소들 때문에 우리는 추리영화에 빠집니다.단순히 ‘누가 범인일까’만을 넘어서, 인간의 심리, 사회의 단면, 그리고 진실의 무게를 함께 다루는 추리 명작 5편을 소개합니다.1. 나이브스 아웃: 글라스 어니언 (2022)억만장자 마일스 브론이 친구들을 자신의 호화로운 섬 '글라스 어니언'에 초대합니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 명탐정 브누아 블랑도 그 자리에 등장하죠. 처음에는 살인 미스터리 게임을 즐기자는 가벼운 분위기였지만, 파티 중 실제 살인 사건이 벌어지면서 상황은 급변합니다. 각 인물들은 저마다 비밀을 숨기고 있고, 그들의 관계는 점점 균열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탐정 블랑은 이 사건이 단순.. 2025. 4. 10.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엄마가 있어서 괜찮았던 시절의 기억) 《플로리다 프로젝트(The Florida Project)》를 보고 나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그저 영화 속 이야기를 본 건데, 자꾸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넉넉하진 않았지만,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늘 집에 엄마가 있었다는 사실. 그 따뜻한 기억이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을 툭툭 건드렸다.어쩌면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가난’을 이야기해서가 아니다. 그 가난 속에서도 웃고, 살아내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이의 시선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무니의 모습은 한때의 나였고, 헤일리의 모습은 나의 엄마였다.디즈니월드 옆의 보라색 모텔, 현실의 동화영화의 배경은 디즈니월드 옆 ‘매직 캐슬’이라는 보라색 모텔이다. 무니라는 여섯 살 소녀와 엄마 헤일리는 그곳에서 살아간다. 이름은 마법 같지.. 2025. 4.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