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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다시 보는 식스 센스: 그날 극장에서 멈췄던 숨

by ssnarae25 2025. 4. 11.

영화: 식스센스 포토
영화 식스센스

 

 

그날 극장에서

1999년 여름, 친구와 단순한 호기심으로 극장을 찾았다. 액션 영화도, 로맨스도 아닌 심리 스릴러라며 표를 끊었지만, 당시엔 "이게 뭐야?"라는 말이 입에 맴돌 만큼 정보도 없고, 기대감도 크지 않았다. 하지만 상영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영화는 내게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기억의 인장’이 되었다. 바로 《식스 센스(The Sixth Sense)》였다.

영화는 차분했다. 브루스 윌리스가 주연인데, ‘다이하드’ 시리즈처럼 거친 액션은 전혀 없었다. 대신 그는 어린 소년 콜을 치료하려는 정신과 의사 ‘말콤 크로우 박사’로 등장한다. 조용하고 느린 호흡의 전개, 정적으로 구성된 화면, 그리고 섬세하게 눌러 담은 감정선. 사실 초반엔 지루할 뻔했지만, 콜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 한마디가 모든 걸 바꿔놓았다.

“죽은 사람들이 보여요.”

극장 안이 정적에 휩싸였다. 나뿐 아니라 모든 관객이 숨을 죽였다. 당시 내 나이와 콜의 나이가 비슷했기에, 그 대사가 단순히 영화 속 대사가 아닌 현실처럼 느껴졌다. 그 뒤로 나는 이 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 ‘경험’하게 됐다. 유령보다 무서운 건, 그들을 보는 아이의 외로움과 두려움, 그리고 아무도 그 아이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현실이었다.

말콤 박사는 그를 도우려 하지만, 어딘지 계속 어긋난다. 관객의 시선 역시 콜에게 쏠리지만, 어느 순간부터 ‘말콤’이라는 인물 자체에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는 왜 아내와 대화하지 않는가? 왜 주변 사람들은 그를 무시하는가? 처음엔 이것을 ‘감정의 거리감’으로 해석했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것이 뒤집힌다. 말콤은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그 순간 나는 진심으로 소름이 끼쳤다. 단순히 반전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영화 전체가 그 결말을 위해 철저하게 설계되어 있었다는 사실에 경외심이 들었다. ‘말하지 않았을 뿐, 숨기지 않았다’는 식의 복선들이 너무도 정교하게 숨겨져 있었다. 그 여운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참 동안 계속됐다. 친구와 우리는 극장 밖에서도 말을 잇지 못했다. 그저 눈빛만 주고받으며 머릿속으로 장면들을 되감기 했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

단순히 플롯의 반전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 뒤에 깔린 정서적 메시지가 깊다. 콜은 죽은 사람들을 보는 능력을 가진 아이지만,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그는 그들을 이해하고, 심지어 도와주는 존재로 성장한다. 공포의 대상으로만 여겼던 유령들이, 사실은 ‘남겨진 말’을 전하지 못해 떠돌고 있었음을 알고 난 후, 그는 그들과 대화를 시도한다. 그 변화의 과정은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상처의 이해와 치유’에 대한 은유일지도 모른다.

말콤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콜을 돕는 과정에서 결국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살아있는 동안 하지 못했던 일들, 아내에게 전하지 못했던 사랑의 언어들, 그리고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회한을 조용히 정리하며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이젠 괜찮아”라는 말로 자신을 놓아주는 그 장면은, 내게 큰 울림을 안겼다.

이 영화를 처음 봤던 그날 이후

나는 영화를 ‘두 번’ 보게 되는 습관이 생겼다. 모든 복선을 다시 살피고, 내가 처음엔 놓쳤던 것들을 찾아내는 재미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식스 센스》는 그 첫 작품이었다. 25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이 영화를 보면 그 감정은 다르게 다가온다. 10대 시절에는 ‘놀람’이 컸다면, 지금은 ‘이해’가 크다. 어릴 땐 유령이 무서웠지만, 지금은 유령보다도 마음속에 쌓인 미련과 말하지 못한 감정들이 더 무섭다.

2024년의 지금, 《식스 센스》는 여전히 유효하다. 자극적인 서사와 화려한 시각 효과에 길들여진 현대의 관객에게도 이 영화는 ‘정적 속의 충격’을 선사한다. 그것도 아주 조용히, 그러나 깊숙이. 우리가 지나쳐온 상처, 잊었다고 믿었던 감정들, 그리고 아직 정리하지 못한 관계를 떠올리게 만든다.

이 영화는 유령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외면해 온 감정과 직면하게 하는 영화다. 다시 보면, 울게 될지도 모른다.

정보 및 이미지 출처: Naver, IMDb,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