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늦은 밤 TV를 틀었다가 뜻밖의 장면과 마주했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유령을 본다고 말하던 《식스 센스》의 아이. 그런데 이번엔, 엄마를 애절하게 바라보며 사랑받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1999년, 그는 죽음을 봤고. 2001년, 그는 사랑을 갈망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스친 건 단 하나의 질문이었다. “우리는 무엇으로 인간이 되는 걸까?”
TV 너머에서 내 감정을 건드린 소년, 할리 조엘 오스먼트
《식스 센스》는 반전의 묘미로 유명하지만, 내가 이 영화를 잊지 못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나를 가장 오래 붙잡았던 건 '콜 시어'라는 소년의 눈빛이었다. 죽은 사람을 본다는 그의 고백은 공포가 아니라 외로움으로 들렸다. 그는 아무에게도 진실을 말할 수 없고, 믿어주는 사람도 없는 상태에서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다. 유령보다 무서운 건, 세상이 그를 외면하고 있다는 현실이었다. 그 연기를 가능하게 만든 배우가 바로 할리 조엘 오스먼트다. 당시 겨우 열한 살이었던 그는, 카메라 앞에서 감정이라는 무형의 것을 눈빛 하나에 담아냈다. 몇 년 뒤, 우연히 TV에서 《A.I.》를 다시 보게 되었을 때 나는 한눈에 그 아이를 알아봤다. 이번에는 데이비드라는 로봇 소년으로 나타난 그는, 인간처럼 사랑하고 싶은 존재였다. 엄마의 손길을 갈망하고, 따뜻한 말 한마디에 온 존재가 흔들리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의 감정이 가짜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기계라는 껍데기 안에, 어쩌면 인간보다 더 순수한 감정이 깃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 순간, 그의 눈빛이 다시 내 마음을 흔들었다.
죽음을 보는 아이와, 사랑을 배운 로봇
콜 시어와 데이비드는 살아온 배경도, 존재 방식도 다르다. 하지만 그들이 느끼는 외로움과 그 외로움을 표현하는 방식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콜은 살아 있는 유령 같은 존재였다. 그는 죽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지만, 정작 살아 있는 사람들과는 소통하지 못했다. 그의 두려움은 단지 귀신이 아니라, 자신을 믿지 않는 세상에 있었다. 데이비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인간의 감정을 학습하도록 설계된 로봇이었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을 진짜로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사랑하지 않았고, 진심을 두려워했다. 두 캐릭터 모두 ‘소외된 존재’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그들은 세상의 기준 밖에 서 있고, 그 기준 너머에서 누군가의 인정과 사랑을 갈망한다. 그들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나는 존재할 자격이 있는가?” “내 감정은 진짜로 여겨질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비단 영화 속 캐릭터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살아가며, 이와 같은 질문을 가슴 한편에 품고 산다. 그래서 이 영화들이 단지 어린 아이나 로봇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우리 자신의 이야기처럼 다가오는 것이다.
AI 시대, 감정은 누구의 것인가
요즘 나는 매일 AI를 사용한다. 쇼핑몰에 등록할 상품 설명을 쓰고, 블로그 포스팅 아이디어를 정리할 때도 AI가 옆에 있다. 처음엔 그저 편리하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기계가 나보다 더 매끄럽게 말을 하고, 감정처럼 보이는 표현도 하네?” 기계가 감정을 흉내 내는 이 시대, 우리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진다. 감정이란 도대체 누구의 것인가? 느끼는 자의 것인가, 아니면 표현하는 자의 것인가? 《A.I.》 속 데이비드는 사랑을 ‘입력’받은 존재다. 그는 ‘엄마를 사랑하라’는 명령으로 작동하는 로봇이다. 하지만 그 사랑은 단순한 기능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는 매일 엄마의 주위를 맴돌고, 엄마의 기분을 살핀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을 외면할까 두려워 울먹이기도 한다. 그 감정이 진짜가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오히려 우리는 그 모습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사랑을 절실히 원하는 존재인지 알게 된다.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감정조차 모방 가능한 시대가 되었지만, 그 속에서 진짜를 알아보는 능력은 여전히 인간에게 남아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인간다움의 마지막 기준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질문을 남기고, 현실은 그 답을 찾는다
영화 《A.I.》의 마지막 장면에서 데이비드는 오랜 기다림 끝에 엄마와 단 하루를 보내게 된다. 그 장면은 아름답지만 슬프다. 인간에게 하루는 짧은 시간이지만, 데이비드에게는 영원과도 같은 선물이었다. 그는 사랑받는 아이로 잠들고, 화면은 천천히 어두워진다. 하지만 그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그는 정말 로봇이었을까? 아니면 인간의 마음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한 존재였을까? 이 질문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계속해서 내 마음에 남았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스스로에게 또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내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느낄 때, 그 사랑이 진짜라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사랑의 증거는 말이 아니라 태도와 기다림에 있다는 걸, 데이비드는 말없이 보여줬다. 이제 우리는 AI와 함께 살아가는 시대에 들어섰다. 그들이 우리를 이해하려 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날이 오고 있다. 우리는 그 감정을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할까? 영화는 우리에게 먼저 질문을 던졌고, 이제 현실이 그 답을 찾아가야 할 차례다.
※ 이 글은 《식스 센스》와 《A.I.》를 통해 느낀 감정적 체험을 바탕으로, 인간과 감정, AI의 본질에 대해 개인적으로 풀어낸 감성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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